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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폭로의 교회, 불편한 진실(3)
성직 타파 주장하고 뛰쳐나온 개신교가 다시 성직 주장은 자기 모순
 
달랑 기사입력  2015/02/07 [19:45]
사제주의란 우열의 계급적 개념이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는 식의 계급주의(엘리트주의)는 종의 우열을 따지는 진화론에 가깝다. 사제주의는 그리스도인을 사제 우등과 사제외는 열등으로 나눈다. 이는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사상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사제주의는 인간을 부자유하고 불평등하게 만든다. 

목사가 성직이라는 사제주의는 한국교회에서 제왕적 목회자, 돈·권력·섹스에 대한 탐닉, 교회 세습, "어딜 감히 목사한테!"라는 병폐를 만들어 냈다. 목사가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근거도 없는 주장은 이미 폐기된 사제주의와 같아 한국의  암흑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하겠다.  

만인사제주의(만인제사장주의)로 성직을 깬다.

종교개혁시대 이전부터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서 맞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의 주류였던 독일의 마틴루터의 95개조 선언이 도화선이 됐다.
 
루터는 1520년 종교개혁 이념의 기초가 될 세 편의 중대한 팜플렛을 작성했다. 이 저술들에서 그는 자신의 세 가지 신학적 전제, 즉 믿음지상주의(sola fide), 성경지상주의(sola scriptura), 그리고 만인사제주의(universal priesthood of believers)를 주장했다.
 
만인사제주의는 만인제사장주의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모든 믿음을 가진이들이 사제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사제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교인들이 읽게 하여 루터의 종교개혁은 "사제의 성경을 교인들에게 돌려줬다"라고 해석하기도한다.
뿐만아니라, 사제만이 집례할수 있는 가토릭의 미사에 해당하는 예배를 누구나 할 수 있는 만인사제주의는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근대 유럽의 정치적·사회적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루터는 만인사제주의가 민주주의적 정치 구조를 의미한다고는 전혀 생각한 바가 없었다. 독일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사회적 불평등은 필요하다고 믿었고, 농노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자들은 도둑질을 부채질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그가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영적 평등이었던 것이다.
 
만인사제주의는 민주주의로 성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만인사제주의는 훗날 개인주의의 성장을 크게 자극했다. 마틴루터는 영성에 국한해 민주나 개인주의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훗날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다른 사람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모두 다 제각기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로마가토릭은 사제가 성직자였고, 이 경우 수녀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틴루터에 의한 만인사제주의가 등장하면서 속직과 대비된 성직의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것이다. 개신교는 성속을 구분함을 용인하지 않는다.
 
사목노동이나 구두수선공의 노동이 다 성직, 따라서 성속구분은 의미 없어
 
사목노동이나, 구두수선공의 노동이 다르지 않다. 목사의 노동이 거룩하다면 구두수선공의 노동도 거룩하다. 다 거룩하여 성스럽다면 속에 대비한 성은 없는 것과같다. 
 
모든 노동은 다 거룩한 것이다. 목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세상의 모든 노동은 모두 섬김과 봉사다. 인간의 타락 이후 노동도 타락하였기 때문에 그렇지 원래 모든 노동은 거룩한 것이며 다른 사람과 온 창조물에 대한 섬김과 봉사다. 세상의 노동이 하나님의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타락할 수 있는 것처럼 목회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타락한 목회를 한국교회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다. 노동과 목회는 모두 거룩하지만 둘 다 타락할 수 있다.

예배와 기도는 거룩하고 노동은 비천한 것이라는 중세 가톨릭의 수도원적인 성속 이원론 타파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다. 

목사직은 성직도 아니야,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어

목사는 만인 사제중 하나일 뿐, 때문에 우등 계급도 아니며 교인들이 열등하지도 아니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개신교 목사라고 할수 있다.  즉, 이미 성직을 깨고 나온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해야한다. 또한 얼마 든지 타락할 수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절제하며, 겸손히 자기 직분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감독(목사)는 성직은 아니지만, 선한일 사모하고 아래와 같이 살아라

디모데전서3:1-7 미쁘다. 이말이여, 곧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김독든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 대접하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 지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목사는 성직도 아니고, 교인의 직업이 속직도 아니어서, 계급이 아니며, 평등한 같은 교우이다. 다만, 다름이 있다면 신학을 전공한 성경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즉, 목사는 프로, 교인은 아마추어 또는 목사는 축구장의 선수, 교인은 관중이라고 할 수 있어서 선수가 못하면, 관중이 야유도 할 수 있고, 야유했다고 하여 하나님이 목사 편을 들어 교인을 벌을 준다는 식의 설교는 목사의 자기 이익을 위한 자기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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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2/07 [19:45]  최종편집: ⓒ dal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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