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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수목사의 칼럼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달랑 기사입력  2018/07/28 [11:40]

 교회사적으로 보면 1960-1980년대 교회는 카리스마적인 부흥운동을 추구하였습니다. 갑자기 기도운동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기도그룹들이 곳곳에 생겼고, 열광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당시는 기도원도 큰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기도원 마다 성도들로 꽉 찼습니다. 제 경우도 그때 기도를 가장 많이 하였습니다. 용하다고 소문난 기도원마다 다 다녔습니다. 기도원에서 부흥강사의 설교를 듣고 다함께 통성기도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기도는 대부분 외향적이고, 말이 많고, 무절제하였습니다. 단순하고 조용하고 침묵하는 기도운동은 오히려 비주류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때 그렇게 외향적으로 기도하였던 그런 모습의 기도는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저도 그런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기도원은 사양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 성도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운동의 트렌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향적이고 인격적이고, 침묵하는 기도를 갈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원에서 하는 통성기도의 특징은 외향적입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기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의 시발점은 바로 ‘나’입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시옵소서! 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사업이 번성하게 하옵소서!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우선입니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대화하듯 하는 그런 기도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비인격적인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인격적이라는 의미는 1:1 친밀한 관계에서 대화하듯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주고받는 기도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기도하는 태도를 가상히 여기셔서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은 기도할 때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지 마라, 주님이 다 아신다! 고 하셨는데 우리는 중언부언하였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세월이 흘러갑니다. 그런데도 우리 자신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맨 날 그 타령입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조금 영리해졌습니다. 통성기도하자고 하면 1분정도 하고 조용해집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할 것이 많아도 5분 정도 구하면 바닥이 나옵니다. 또 어떤 분은 그렇게 통성으로 구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고, 되는 것은 그렇게 기도 안 해도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점차 통성 기도하였던 옛날은 추억이 되어버렸고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은 새로운 기도의 틀을 소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옛 통성기도의 때를 그리워하지만 거기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가끔 통성기도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 좀 더 인격적인 기도는 없을까를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도에 대한 이런 추세는 있었습니다. 한 사조는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서서 크게 통성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일군의 이방사람들도 빈말을 되풀이 하면서 중언부언 기도하였습니다. 같은 기도 트렌드입니다. 이 사람들의 기도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외향적이고, ‘나’ 중심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인격적입니다. 여기에 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기도의 사조를 가르쳐줍니다. 기도할 때 저들처럼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라,’ ‘문을 닫아라,’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이 기도는 내향적입니다. 조용합니다. 나 중심이 아닙니다.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바로 아버지 중심입니다. 아버지와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에서 하는 개인적 기도입니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이 기도는 ‘아버지체험’이 있어야 가능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체험말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면 1:1의 아버지와의 인격적 대화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옛 성인들은 이 기도를 contemplative prayer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도를 정의한다면 내 속에 계신, 또는 다른 사람 속에 계신, 또는 자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듣고, 때로는 느끼고, 동의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언제 어디서나 계신 하나님을 알아보고 대화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의 목적은 주님을 만나는데 있습니다. 이 기도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이 하여야 할 기도입니다.

옛 사막의 수도사들 이래로 이 친밀한 인격적 기도에 들어가기 위해서 시작했던 기도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단순한 기도입니다. 이 단순한 기도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단순한 기도는 창과 같습니다. 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을 통해서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를 아무리 오랜 시간했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무효입니다. 단 30분을 했어도 주님을 만났다면 진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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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8 [11:40]  최종편집: ⓒ dal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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