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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수목사의 칼럼 "흑수저,금수저,聖수저"
 
달랑 기사입력  2018/09/11 [10:40]

언젠가 막내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나는 금수저여요? 흑수저여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금수저도 아닌 것 같고, 흑수저도 아닌 것 같고. 그럼 잡수저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금수저, 흑수저로 사람들을 계급화 시켰습니다. 부모의 직업, 경제력에 따라 금수저, 흑수저로 갈랐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개천에서도 잘만하면 용이 났습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흑수저들은 아이도 낫지 않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금수저는 영원히 금수저로 살고, 흑수저는 영원히 흑수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금수저는 대를 이어 영원히 대접받고, 고귀한 존재로 살아가고, 흑수저는 영원히 대를 이어 하층민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는 그렇습니다. 좀 우울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도 금수저, 흑수저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 나무그릇과 질그릇이 있습니다.” 금그릇은 금수저, 질그릇은 흑수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niv성경은 이 부분을 'articles'로 번역하였고, kjv성경은 ‘vessels’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niv 성경에 따르면 금그릇을 금수저라고 말할 수 있고, 질그릇을 흑수저라고 번역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수저의 색깔을 바꾸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한 번 금색갈이면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외부 색깔을 가지고 내적인 가치까지 측정하고 평가합니다. 금수저이면 인격도 잘나 보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잘할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일도 금수저가 잘할 것 같아서 그들을 시키기를 좋아합니다. 흑수저는 나서지도 않고 부끄러워하고 말이 없어서 교회에서도 인정받기 힘듭니다.

목사들도 금수저 흑수저가 있다고 합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를 아버지로 둔 목사는 금수저 목사라고 하네요. 흑수저 목사는 교회를 개척할 엄두도 못 냅니다. 만약 교회에서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세상의 금수저, 흑수저론이 통한다면 큰일입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금수저, 흑수저론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교회에는 금수저도 있고, 흑수저도 있습니다만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외모보다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금그릇에도 쓰레기를 담은 그릇이 있고, 질그릇에도 보물을 담은 그릇이 있습니다. 금그릇도 깨끗하지 못한 그릇이 있고, 질그릇도 깨끗하게 닦여있는 그릇이 있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그릇은 금그릇이라도 쓸모가 없고, 질그릇이라도 깨끗이 닦여있으면 쓸모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릇의 외모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구별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그 그릇들을 금그릇과 질그릇으로 계급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쓸모 있는 그릇이냐 쓸모없는 그릇이냐로 나누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둘로 나눕니다. 하나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냐, 하나님에게 쓸모없는 사람이냐로 나눕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금그릇도 쓸모없는 그릇이 될 수 있고, 질그릇도 쓸모 있는 그릇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그릇으로 태어났든지 자랑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금그릇으로 태어났어도 흑그릇처럼 사세요. 흑그릇으로 태어났어도 금그릇처럼 사십시오. 문제는 하나님 앞에 쓸모 있는 그릇이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하나님 쓰기기에 합당합니다. 거룩이란 1차적으로는 물리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였느냐의 문제입니다. 시골에서는 제사를 많이 지냅니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따로 구별해 놓은 그릇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사 때가 되면 제기를 다 꺼내놓고 깨끗하게 닦습니다. 이것을 구별이라고 합니다. 2차적으로는 윤리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거룩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되어지면 주님께 쓰임 받는 그릇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은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준비되어진 사람입니다. 선한 일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되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 금식하는 것은 다 선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일을 하는 유대인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들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그런 선한 일을 한 것입니다. 마음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흑수저도, 금수저도, 거룩하게 구별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준비되어지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聖)수저가 됩니다. 흑수저를 넘어서, 금수저를 넘어서, 성수저가 됩니다. 주님에게는 금수저니, 흑수저니,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성수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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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1 [10:40]  최종편집: ⓒ dal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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